누구의 눈으로 보는가
몰스킨 노트 하나가 있다. 검은 표지, 고무밴드, 180페이지. 물리적으로 동일하다. 작가 지망생한테 이게 뭔가? "헤밍웨이가 쓰던 그 노트." 빈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그는 작가 계보에 자기 이름을 올린다. 20,000원이 아니라 정체성을 산 거다. 그냥 메모 필요한 직장인한테는? "다이소 노트보다 열 배 비싼 거." 기능은 똑같은데
몰스킨 노트 하나가 있다. 검은 표지, 고무밴드, 180페이지. 물리적으로 동일하다. 작가 지망생한테 이게 뭔가? "헤밍웨이가 쓰던 그 노트." 빈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그는 작가 계보에 자기 이름을 올린다. 20,000원이 아니라 정체성을 산 거다. 그냥 메모 필요한 직장인한테는? "다이소 노트보다 열 배 비싼 거." 기능은 똑같은데
마샬 맥루언(Marshall McLuhan)은 1964년에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 선언했다. 텔레비전이 전달하는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텔레비전이라는 형식 자체가 세상을 바꾼다는 거다. 뉴스를 보든 드라마를 보든 상관없다. 화면 앞에 앉아서 수동적으로 시청하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인지 구조를 재편한다. 이 통찰을 상품에 적용하면 재미있는 게 보인다. 제품의 기능이 메시지가 아니다. 제품을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 위스키라는 게 있다. 일반 위스키와 뭐가 다르냐면, 물을 안 섞었다. 그게 전부다. 통에서 바로 꺼낸 거다. 그런데 위스키 덕후한테 캐스크 스트렝스가 뭐냐고 물어보면 "도수 높은 술"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블렌더가 되는 거지." 증류소는 보통 위스키에 물을 섞어서
2014년 Slack이 런칭할 때 쓴 한 문장이 있다. "Be less busy." 이메일, 회의, 메신저, 문서 공유—업무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넘쳤다. 그 시장에 또 하나의 도구를 들고 나온 Slack이 한 말은 기능 설명이 아니었다. "덜 바쁘게 해줄게." 그게 전부였다. 이 한 문장이 Slack을 270억 달러 회사로 만들었다.
편의점 음료 냉장고를 열어보라. 코카콜라, 펩시, 포카리스웨트, 레드불, 몬스터. 10년 전에도 이 얼굴들이었고, 지금도 이 얼굴들이다. 매년 수백 개의 새 음료가 출시된다. 대부분 1년을 못 버틴다. 편의점 냉장고에서 슬그머니 사라진다. 왜 음료 시장에서는 신생 브랜드가 살아남기 어려운가. 신념이 부족해서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음료수에 무슨 신념이 필요한가. 마시면 되는 거
2004년 Dove가 "Real Beauty"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 광고업계는 의아해했다. 비누 회사가 왜 "아름다움의 정의"를 논하는가. 제품 기능을 말해야 할 시간에 철학을 말하고 있다. 20년이 지났다. Dove는 여전히 같은 캠페인을 하고 있다. "Real Beauty"는 슬로건을 넘어서 Dove라는 브랜드 자체가 됐다. 비누 성분이 바뀌어도,
2019년 Liquid Death가 처음 물을 팔기 시작했을 때, 투자자들 대부분이 거절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물에 무슨 브랜딩이 필요해?" 맞는 말이다. 물은 물이다. H2O. 에비앙이든 아이시스든 분자 구조는 같다. 수원지가 알프스든 제주도든 목마름을 해결하는 기능은 동일하다. 차별화할 게 없다. 그런데 Liquid Death는 5년 만에 기업가치 14억 달러가 됐다. 2023년 매출
2011년 Dollar Shave Club이 나왔을 때 면도기 시장은 질레트가 지배하고 있었다. 점유율 70%. 마이클 두빈이 가진 건 월 1달러짜리 면도기와 카메라 한 대뿐이었다. 그가 만든 90초짜리 영상은 면도기 날의 품질을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시작했다. "Are our blades any good? No. Our blades are f**king great." 그
열에 여덟은 "초격차"를 말한다. "저희는 기술로 초격차를 만들 겁니다." "이 시장에서 초격차 1위가 목표입니다." 초격차. 압도적 차이. 경쟁자가 넘볼 수 없는 격차. 멋진 말이다. 문제는 대부분이 이 말을 쓸 자격이 없다는 거다. 초격차라는 개념이 유행한 건 삼성 반도체 때문이다. 1990년대, 삼성은 D램 시장에서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이거 당연한 얘기 아닌가?" 맞다. 당연한 얘기다. 고객을 세그먼트로 나누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메시지를 만들고, 하나씩 점령해나간다. 마케팅 교과서 1장에 나올 법한 얘기다. 그런데 대부분의 회사가 이걸 안 한다. 안 하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귀찮아서다. 112개 조합을 만들고,
세 개의 축이 있다. 이전 경험 7가지. 첫 경험자, 인지-미행동자, 경쟁사 만족자, 경쟁사 실망자, 자사 만족자, 자사 실망자, 카테고리 회의론자. 동기의 강도 4가지. 잠재, 인식, 활성, 긴급. 관여도 4가지. 저관여, 중관여, 고관여, 쾌락적 고관여. 조합하면 7 × 4 × 4 = 112개다. MBTI가 16개인데, 이건 100개가 넘는다. 112개 세그먼트를 전부 공략할 수는 없다.
편의점에 들어간다. 음료 코너 앞에 선다. 코카콜라, 펩시, 제로콜라, 스프라이트. 3초 만에 손이 나간다. 뭘 골랐는지 의식도 못 한다. 계산하고 나와서 마신다. 다음 날도 비슷한 걸 산다. 바벨칩을 산다고 치자. 270만원이다. 목 뒤에 붙이는 거다. 뇌에 전기가 흐른다. 3초 만에 결제하는 사람은 없다. 홈페이지를 본다. 후기를 찾는다. 유튜브에 검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