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지만 확실한 바이팅: 없는 위험을 만들어라
2010년 12월, 남양유업이 커피믹스 시장에 진출했다. 동서식품이 80%를 차지하던 1조 원 규모의 시장이었다. 후발주자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남양유업은 김태희를 내세워 이렇게 광고했다. "프림 속 화학적 합성품인 카제인나트륨 대신 진짜 무지방 우유를 넣었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출시 첫해에 1천억 원대 매출을 올렸다. 부동의 2위였던 네슬레를 따돌렸다. 동서식품의 점유율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그런데 카제인나트륨은 정말 해로운 물질일까. 아니다. 카제인은 우유 단백질의 80%를 차지하는 천연 성분이다. 카제인나트륨은 이걸 물에 잘 녹게 만들려고 나트륨을 결합시킨 것에 불과하다. 미국 FDA는 사실상 GRAS, 즉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정되는 물질"로 취급한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아예 "식품"으로 분류한다. 일일섭취허용량도 따로 설정하지 않는다. 그만큼 안전하다는 뜻이다.
한국식품안전연구원도 "인체에 무해하다"는 입장을 냈다. 식약청은 남양유업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유해하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광고는 100일 만에 중단됐다. 그런데 이미 늦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카제인나트륨에 대한 불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동서식품 관계자도 인정했다. "소비자조사 결과, 일부 소비자들이 카제인나트륨을 인체에 해로운 성분으로 오인하고 있다." 결국 동서식품은 2011년 8월, 카제인나트륨을 천연카제인으로 교체했다. 후발주자가 만든 프레임에 1위 업체가 끌려간 것이다.
더 아이러니한 건 따로 있다. 남양유업은 불과 2~3년 전까지 자사 분유와 어린이용 유제품에 카제인을 사용했다. 1991년에는 경쟁사가 "양잿물로 만든 카제인"이라고 공격하자 "카제인나트륨은 아기에게 매우 유익한 영양성분"이라고 적극 반박했던 회사다. 같은 성분을 어린이 제품에는 넣고, 성인 커피에서는 뺐다고 광고한 것이다.
이건 규제가 아니라 상술이 만든 공포다. FDA가 금지하지도 않았다. 학계가 위험하다고 경고하지도 않았다. 기업이 스스로 "화학적 합성품"이라는 프레이밍을 만들었다. "화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안감을 이용했다. 소비자는 카제인이 뭔지 몰랐다. 그냥 "화학적 합성품"이라는 말에 꺼림칙해졌다. 그리고 "뺐다"는 제품을 샀다.
바이팅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손실 회피 원리다. 사람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2배 강하게 반응한다. "우리 커피는 맛있어요"는 약하다. "우리 커피는 화학 합성품이 없어요"는 강하다. 긍정형보다 부정형이 빠르다. 위험을 피하려는 본능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25년 1월, FDA가 레드 다이 3를 금지했다. 34년 만이다. 1990년에 화장품에서는 이미 금지됐던 성분이다. 동물실험에서 발암성이 확인됐다는 이유로. 그런데 식품에는 계속 허용됐다. 수천 개의 제품에 들어갔다. 대화 하트 캔디, 딸기 우유, 마라스키노 체리.
캘리포니아가 먼저 움직였다. 2023년에 캘리포니아 식품안전법으로 레드 다이 3를 포함한 일부 합성첨가물을 금지했다. 이 흐름이 FDA 결정에 압박 요인이 됐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색소 무첨가" 캔디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졸리 캔디 같은 브랜드가 대형 유통 채널에서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시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 대다수가 "천연" 제품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다.
뉴욕의 이바이크 배터리 화재도 같은 구조다. 전기자전거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급증했다. 2023년 한 해에만 수백 건의 화재가 발생했고, 18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는 수십 명에 달했다. 뉴스마다 아파트가 불타는 영상이 나왔다. "방폭형 배터리 백"이 아마존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4층 방화 소재, 2000°F 내열, 폭발 억제. 가격은 40~50달러. "안전한 보관"이 아니라 "폭발 안 한다"가 셀링 포인트다.
뉴욕시가 UL 인증 규제를 도입하자 오히려 안전 제품 시장이 열렸다. 2024년에는 사망자가 6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방화 백 시장은 성장했다. 공포가 규제를 만들고, 규제가 카테고리를 만든다.
규제는 제약이 아니다. 프레이밍이다. "우리는 OO가 없습니다"는 "우리는 OO가 있습니다"보다 강력하다. 왜냐하면 부정형은 비교 대상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레드 다이 3가 금지됐다는 건, 아직 레드 다이 3를 쓰는 경쟁자가 있다는 뜻이다. 카제인나트륨을 뺐다는 건, 아직 카제인나트륨을 쓰는 경쟁자가 있다는 뜻이다. 그 경쟁자가 존재하는 한, "OO 프리"는 바이팅이다.
안전은 위험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위험이 없으면 안전도 없다. FDA가 금지령을 내리는 순간, 위험이 공식화된다. 기업이 "화학적 합성품을 뺐다"고 광고하는 순간, 위험이 암시된다. 그리고 그 위험을 피했다는 것 자체가 셀링 포인트가 된다.
손실 회피는 마케팅에서 가장 강력한 레버다. 그런데 대부분의 마케터는 이걸 역으로 쓴다. "이걸 사면 OO을 얻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게 아니다. "이걸 안 사면 OO을 잃습니다"가 더 강하다. 그리고 규제는 이 문장을 공식화해준다. "이걸 안 사면 암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는 내가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 FDA가 금지령을 내리면, 소비자가 스스로 그 결론에 도달한다.
규제를 기다려라. 규제가 오면 시장이 열린다. 규제가 오기 전에 그 레인에 있어라. 규제가 오는 순간 너는 선점자가 된다. 문제를 공식화하는 건 정부의 일이다. 솔루션을 제공하는 건 너의 일이다.
FDA는 레드 다이 3를 금지했다. 다른 합성 염료들도 검토 대상에 올라 있다. 천연 색소 시장은 연평균 8% 이상 성장하고 있다. 지금 천연 색소 라인을 준비하는 식품 회사는 규제가 확대될 때 시장을 먹는다. 지금 준비 안 하는 회사는 나중에 재배합 비용을 댄다.
남양유업의 "카제인나트륨 무첨가"는 규제 없이도 효과를 냈다. 100일 만에 시정명령을 받았지만, 동서식품은 결국 따라갔다. 다만 남양유업은 나중에 대리점 갑질, 불가리스 사태 등으로 신뢰를 잃었다. 2020년대 들어 점유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동서식품은 90% 수준을 회복했다. 상술로 만든 공포는 언젠가 들통난다. 규제로 공식화된 위험은 들통날 일이 없다. 없는 위험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런데 그건 빌린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