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바이팅 1

2011년 Dollar Shave Club이 나왔을 때 면도기 시장은 질레트가 지배하고 있었다. 점유율 70%. 마이클 두빈이 가진 건 월 1달러짜리 면도기와 카메라 한 대뿐이었다.

그가 만든 90초짜리 영상은 면도기 날의 품질을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시작했다. "Are our blades any good? No. Our blades are f**king great."

그 영상은 48시간 만에 1,200만 뷰를 찍었다. 5년 후 유니레버가 10억 달러에 인수했다.


면도기 성능을 설명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빈이 판 건 면도기가 아니었다. 관점이었다. "면도기에 20달러 쓰는 건 바보짓이다"라는 관점. 질레트가 만들어놓은 게임의 규칙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이게 세계관으로 바이팅하는 방식이다.

제품의 기능을 나열하면 고객의 뇌는 비교 모드로 들어간다. "이게 저것보다 나은가?" 스펙 대 스펙. 가격 대 가격. 이 싸움에서는 선두주자가 거의 항상 이긴다. 이미 점유한 자리가 있으니까.

관점을 제시하면 게임이 달라진다. 비교가 아니라 선택이 된다. "이 세계관에 동의하는가, 안 하는가." 동의하는 순간 고객은 당신 편이 된다. 경쟁사는 비교 대상이 아니라 적이 된다.


세계관 바이팅이 작동하는 이유는 뇌의 작동 방식에 있다.

콜린스와 로프터스의 확산 활성화 이론에 따르면, 기억은 고립된 정보가 아니라 연결된 노드 네트워크로 저장된다. "면도기"라는 노드는 "질레트", "비싸다", "마트", "파란색" 같은 노드들과 연결되어 있다.

새로운 브랜드가 이 네트워크에 끼어들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존 노드에 붙는 것이다. "우리도 면도기입니다. 질레트보다 쌉니다." 이러면 "질레트" 노드의 하위 항목이 된다. 떠올릴 때 질레트 먼저 떠오르고, 운이 좋으면 당신도 떠오른다.

다른 방법은 새로운 노드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이다. "면도기에 돈 낭비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이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의 뇌에는 새로운 연결이 생긴다. "면도기 사기 → Dollar Shave Club". 질레트를 거치지 않는 직통 경로.

세계관은 이 직통 경로를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관을 "브랜드 스토리"와 혼동한다. 창업자의 고생담, 회사의 역사, 미션 스테이트먼트. 이런 건 세계관이 아니다. 자기 얘기다.

세계관은 자기 얘기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렌즈다. 고객이 그 렌즈를 쓰면 세상이 다르게 보여야 한다.

Liquid Death를 보자. 물 회사다. 그들의 세계관은 이렇다. "건강한 선택이 지루할 이유가 없다." 이 렌즈를 쓰면 생수 시장이 다르게 보인다. 에비앙, 볼빅, 아이시스—전부 비슷비슷하고 지루하다. 건강을 선택했다고 쿨함을 포기해야 하나? Liquid Death는 그 질문에 답한다. 캔 디자인, "Murder Your Thirst" 슬로건, 데스메탈 광고. 전부 그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다.

물의 성분이나 수원지를 설명했으면 이런 브랜드가 될 수 없었다.


세계관 바이팅에는 순서가 있다.

첫째, 기존 게임의 규칙을 정의한다. 고객이 지금 믿고 있는 것. 당연하게 여기는 것. 질레트가 만들어놓은 "좋은 면도기는 비싸다"는 공식. 생수 시장의 "건강한 건 심심하다"는 암묵적 합의.

둘째, 그 규칙에 균열을 낸다. 왜 그래야 하는가? 누가 그렇게 정했는가? 그 규칙 때문에 손해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균열이 생기면 고객은 불편해진다. 좋은 불편함이다. 생각하게 만드니까.

셋째, 새로운 규칙을 제시한다. 기존 규칙을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안이 있어야 한다. "면도기는 1달러면 충분하다." "건강한 선택도 쿨할 수 있다." 새로운 규칙이 고객에게 더 나은 세상을 보여줘야 한다.

이 세 단계가 완성되면 제품 설명은 거의 필요 없다. 세계관이 제품을 설명하니까.


여기서 흔한 실수가 있다. 세계관을 만들었으니 이제 광고에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세계관은 광고 카피가 아니다. 의사결정 필터다.

Dollar Shave Club의 세계관이 "면도기에 돈 낭비하지 마라"라면, 모든 의사결정이 이 필터를 통과해야 한다. 패키지 디자인은? 화려하면 안 된다. 돈 낭비하지 말라면서 포장에 돈 쓰면 모순이다. 고객 서비스는? 간결해야 한다. 쓸데없는 절차 없이. 가격 정책은? 숨겨진 비용 없이 명확하게.

세계관이 일관되면 마크가 남는다. 고객이 한 번 경험하면 다른 모든 접점에서 같은 메시지를 받는다. 반복되면 각인된다. "아, 이 브랜드는 이런 걸 믿는구나."

세계관이 일관되지 않으면 증발한다. 광고에서는 혁신을 말하고 제품에서는 평범함을 보여주면, 고객의 뇌는 혼란스러워한다. 혼란스러운 건 기억되지 않는다.


세계관 바이팅은 모든 상황에 맞는 건 아니다.

시장이 이미 성숙해서 모든 플레이어가 비슷비슷할 때 효과적이다. 차별화할 기능이 없을 때. 가격 경쟁이 바닥을 쳤을 때. 이럴 때 관점의 차이가 유일한 차별점이 된다.

반대로 제품 자체가 압도적으로 다를 때는 필요 없다.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스티브 잡스는 세계관을 팔지 않았다. 제품을 보여줬다. 터치스크린, 인터넷, 전화가 하나에. 그게 바이팅이었다.

당신의 상황이 어디인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세계관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일관되게 유지하는 게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유혹이 온다. 매출이 정체되면 "우리도 저거 해볼까?" 경쟁사가 새로운 걸 하면 "우리도 따라가야 하나?" 이런 유혹에 넘어가면 세계관이 흐려진다. 흐려지면 마크가 지워진다.

Dollar Shave Club이 10억 달러에 팔릴 수 있었던 건 6년 동안 같은 메시지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Liquid Death가 기업가치 14억 달러가 된 건 "Murder Your Thirst"를 한 번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관은 발명보다 고수가 어렵다.


결국 세계관 바이팅의 핵심은 이것이다.

제품을 팔면 경쟁한다. 관점을 팔면 영토를 만든다.

경쟁은 소모전이다. 영토는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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