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트퍼널4: 퍼널 도구함 — 실전에서 검증된 갭 쪼개기 사례들
2019년, 넷플릭스(Netflix)가 인도에서 이상한 실험을 했다. 월 $2.99짜리 모바일 전용 요금제. 미국 스탠다드 요금의 1/5도 안 됐다. 월가가 의아해했다. 프리미엄 이미지를 깎아먹는 거 아니냐고.
3년 후, 인도는 넷플릭스의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 됐다. $2.99로 들어온 사람들이 $6.99로, $9.99로 올라갔다. 저가 요금제가 브랜드를 깎아먹은 게 아니라, 시장을 열었다.
이게 다운셀(Downsell)이다.
3편에서 랜딩 존을 다뤘다. 고객이 처음 발을 딛는 곳. 이번 편은 그 랜딩 존을 만드는 구체적인 도구들이다. 다운셀, 업셀(Upsell), 번들(Bundle), 언번들(Unbundle), 트라이얼(Trial), 프리미엄. 각각 언제 쓰고, 왜 작동하고, 어떻게 망하는지.
도구부터 보자.
다운셀: 문턱을 낮춰라
고객이 “너무 비싸요”라고 할 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할인하거나, 더 작은 걸 팔거나. 할인은 가치를 깎는다. 다운셀은 가치를 쪼갠다.
러셀 브런슨의 가치 사다리(Value Ladder)가 이 원리다. $7.95 책 → $297 코스 → $997 프로그램 → $25,000 컨설팅. 책을 안 사는 사람에게 코스를 팔 수 없다. 코스를 안 사는 사람에게 컨설팅을 팔 수 없다. 각 단계가 다음 단계의 문턱을 낮춘다.
넷플릭스 인도 사례가 정확히 이거다. $9.99가 너무 높았다. $2.99로 문턱을 낮췄다. 일단 들어온 사람들이 넷플릭스의 가치를 경험했다. 경험한 후에는 더 좋은 화질, 더 많은 디바이스가 “필요”해졌다. 다운셀이 업셀의 씨앗이 됐다.
다운셀이 망하는 경우: 본 상품의 축소판이 아니라 별개의 상품을 팔 때. $2.99 요금제가 넷플릭스의 핵심 경험(무제한 스트리밍, 좋은 콘텐츠)을 그대로 담았기 때문에 작동했다. 만약 $2.99에 광고만 보여줬다면? 다음 단계로 연결되지 않았을 거다.
업셀: 이미 산 사람에게 더 팔아라
맥도날드 직원이 묻는다. “감자튀김 라지로 하시겠어요?” 이게 업셀이다. 이미 구매 결정을 내린 순간, 추가 구매의 마찰이 극적으로 낮아진다. 지갑이 이미 열려 있다.
아마존(Amazon)의 “함께 구매한 상품”이 같은 원리다. 카메라를 사면 메모리 카드, 케이스, 삼각대가 뜬다. 카메라 살 때 이것들을 같이 사는 게 나중에 따로 사는 것보다 마찰이 낮다. 결제 정보가 이미 입력돼 있다. 배송도 같이 온다. “지금 안 사면 나중에 또 주문해야 하네.” 이 생각이 구매를 당긴다.
브런슨은 이걸 극단으로 밀었다. $7.95 책을 사면 결제 완료 페이지에서 오퍼가 뜬다. “이 책의 오디오북을 $37에 추가하시겠어요?” 클릭 한 번이면 된다. 카드 정보 다시 입력할 필요 없다. 구매자의 30%가 추가한다. $7.95 × 0.3 = $2.38 추가 매출이 아니다. $37 × 0.3 = $11.1 추가 매출이다. 책값보다 업셀이 더 크다.
업셀이 망하는 경우: 관련 없는 걸 팔 때. 카메라 사는데 청소기를 추천하면? 무시당한다. 업셀은 “이미 산 것”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책을 샀으면 오디오북, 워크북, 템플릿. 소파를 샀으면 쿠션, 커버, 케어 서비스.
번들: 선택의 마찰을 없애라
애플(Apple)의 원(Apple One)이 번들이다. 뮤직, TV+, 아케이드, 아이클라우드. 따로 사면 월 $30. 번들로 사면 월 $19.95. 고객은 “뭘 살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이거 하나”면 된다.
번들의 진짜 힘은 할인이 아니다. 선택의 마찰 제거다. 뮤직이 필요한지, TV+가 필요한지, 아케이드가 필요한지 각각 판단하는 건 피곤하다. “다 포함된 게 있네, 이거 하나 사자.” 이게 편하다. 번들은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를 줄인다.
번들이 망하는 경우: 고객이 일부만 원할 때. 뮤직만 쓰는 사람에게 원을 강제하면? “필요 없는 것까지 왜 사야 해?” 저항이 생긴다. 그래서 애플은 뮤직 단독 요금제도 유지한다. 번들은 옵션이지 강제가 아니어야 한다.
언번들: 하나를 쪼개라
번들의 반대다.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가 모든 걸 담고 있었다. 구인, 구직, 중고거래, 부동산, 데이팅. 언번들러들이 각각을 떼어갔다. 링크드인(LinkedIn)이 구인구직을, 에어비앤비(Airbnb)가 숙소를, 틴더(Tinder)가 데이팅을.
언번들이 작동하는 이유: 특정 니즈에 최적화할 수 있다. 크레이그리스트는 모든 걸 담느라 어느 것 하나 잘 못했다. 링크드인은 구인구직만 하니까 프로필 시스템, 추천 알고리즘, 네트워킹 기능을 제대로 만들 수 있었다.
당신 비즈니스에 적용하면? 풀 서비스 컨설팅 500만 원을 쪼갤 수 있다. 진단만 20만 원. 전략 수립만 100만 원. 실행 코칭만 200만 원. 각각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면서, 합치면 풀 서비스가 된다. 진단만 필요한 사람은 진단만 산다. 전부 필요한 사람은 번들 할인을 받고 전부 산다.
언번들이 망하는 경우: 쪼갠 조각이 단독으로 가치가 없을 때. 진단 리포트가 “문제가 있습니다”로 끝나면? 가치가 없다. “문제가 있고, 이렇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까지 있어야 단독으로 팔린다.
트라이얼: 경험을 먼저 줘라
SaaS의 표준 모델이다. 14일 무료, 30일 무료. 그런데 대부분 전환율이 3% 미만이다. 왜? 3편에서 말했다. 아하 모먼트에 도달하기 전에 트라이얼이 끝나서.
$1 트라이얼이 무료 트라이얼보다 나은 이유가 여기 있다. $1을 내면 두 가지가 달라진다. 첫째, 진지한 사람만 들어온다. “그냥 한번 써볼까”가 아니라 “진짜 쓸 생각이 있으니까 $1이라도 낸다”가 된다. 둘째, 결제 정보가 이미 등록된다. 트라이얼이 끝나면 자동으로 유료 전환. 취소하려면 행동을 해야 한다. 무료 트라이얼은 유료 전환하려면 행동을 해야 한다. 마찰의 방향이 다르다.
아도비(Adobe)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가 이걸 쓴다. 7일 무료 트라이얼, 하지만 카드 등록 필수. 트라이얼 끝나면 자동 결제. 취소 안 하면 돈이 나간다. “귀찮아서 취소 안 했다”가 상당수의 첫 달 결제 이유다. 비윤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써보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트라이얼이 망하는 경우: 트라이얼 기간 안에 가치를 경험하지 못할 때. 복잡한 B2B 소프트웨어에 14일 트라이얼을 걸면? 14일 안에 온보딩도 못 끝낸다. 이럴 땐 트라이얼 대신 데모나 파일럿 프로젝트가 맞다.
프리미엄: 무료로 잡고, 제한으로 밀어라
3편에서 슬랙 얘기를 했다. 90일 지난 메시지가 숨겨지는 제한. 이게 프리미엄의 핵심이다. 무료 버전이 충분히 좋아서 사람들이 쓴다. 쓰다 보면 제한이 불편해진다. 불편함이 유료 전환을 만든다.
스포티파이(Spotify)도 같은 구조다. 무료 버전으로 음악을 듣는다. 광고가 나온다. 오프라인 저장이 안 된다. 처음엔 참을 만하다. 점점 짜증난다. 짜증이 임계점을 넘으면 월 $10.99가 싸 보인다.
프리미엄의 핵심은 제한의 위치다. 핵심 가치는 무료로 줘야 한다. 슬랙의 핵심 가치는 팀 커뮤니케이션이다. 이건 무료로 준다. 90일 메시지 히스토리는 핵심이 아니라 편의다. 편의에 제한을 건다. 핵심에 제한을 걸면? 무료 버전이 쓸모없어진다. 쓸모없으면 안 쓴다. 안 쓰면 불편함도 못 느낀다. 유료 전환이 안 된다.
프리미엄이 망하는 경우: 무료 버전이 너무 좋거나 너무 나쁠 때. 너무 좋으면 유료로 갈 이유가 없다. 너무 나쁘면 무료도 안 쓴다. 줄타기다.
도구 선택의 원칙
여섯 가지 도구를 봤다. 어떤 걸 써야 하나? 세 가지 질문에 답하면 된다.
첫째, 고객이 어디서 막히나? 가격에서 막히면 다운셀이나 언번들. 선택에서 막히면 번들. 신뢰에서 막히면 트라이얼이나 프리미엄.
둘째, 고객이 가치를 경험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 즉시 경험 가능하면 프리미엄. 시간이 걸리면 트라이얼. 오래 걸리면 파일럿이나 컨설팅.
셋째, 다음 단계로 연결되나? 모든 도구는 다음 단계를 위한 것이다. $7.95 책이 $297 코스로, $2.99 요금제가 $9.99로, 무료 슬랙이 유료 슬랙으로. 연결이 없으면 도구가 아니라 막다른 골목이다.
1편에서 퍼널은 곱셈이라고 했다. 중간에 0이 있으면 전부 0이 된다. 2편에서 마찰이 그 0을 만든다고 했다. 3편에서 랜딩 존이 첫 번째 0을 없앤다고 했다. 이번 편에서 그 랜딩 존을 만드는 도구들을 봤다.
도구는 도구일 뿐이다. 망치가 있다고 집을 지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디에 못을 박아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당신 퍼널의 어디가 0인지, 그 0을 어떤 도구로 채울지, 그건 당신이 답해야 한다.
브런슨은 책에 이렇게 썼다. “퍼널은 과학이 아니다. 공감이다. 고객이 어디서 멈추는지 느껴야 한다. 느끼면 도구는 저절로 보인다.”
$7.95 배송비는 도구가 아니었다. 고객이 “책은 읽고 싶은데 돈 내기는 좀…“이라고 느끼는 지점을 정확히 짚은 공감이었다. 공감이 먼저고, 도구는 그다음이다.
2024년 11월, 재규어(Jaguar)가 30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차가 한 대도 안 나왔다. 하이패션 모델만 나왔다. 핑크, 노랑, 파랑. "Copy Nothing." X에서 1억 7천만 뷰가 터졌다. 일론 머스크가 물었다. "Do you sell cars?"
마케팅팀은 샴페인을 땄을 거다. 1억 7천만. 역대급 바이럴. 전 세계가 재규어를 얘기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아니, 더 나쁜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 머릿속에 남은 건 "그 이상한 영상 올린 브랜드"뿐이었다. 기존에 있던 "영국 헤리티지, 고급 세단" 이미지는 지워졌다. 새로운 건 설치 안 됐다. 1억 7천만 뷰가 브랜드를 깎아먹었다.
같은 달,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이 제러미 앨런 화이트(Jeremy Allen White) 캠페인을 냈다. 《더 베어(The Bear)》 배우가 뉴욕 옥상에서 속옷 입고 운동하는 영상. 48시간 만에 1,270만 달러 미디어 임팩트. 사람들 머릿속에 "캘빈 클라인 = 그 느낌"이 박혔다.
둘 다 바이럴이 터졌다. 둘 다 인지가 폭발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다. 뭐가 달랐나?
대부분은 퍼널을 덧셈으로 생각한다. 위를 넓히면 아래가 커진다고. 노출 100만 하면 구매 1만, 노출 1,000만 하면 구매 10만. 그래서 노출을 늘리려고 한다. 틀렸다. 퍼널은 곱셈이다.
1,000 × 10% × 50% × 0% × 40% = 0.
중간에 0이 하나라도 있으면 끝이 0이다. 노출이 1억이든 10억이든 상관없다. 재규어가 그랬다. 주목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10점. 그런데 "주목"에서 "구매 의향"으로 넘어가는 연결고리가 없었다. 0점. 10 × 0 = 0. 아니, 기존 이미지를 지웠으니 마이너스다. 10 × (-2) = -20.
캘빈 클라인은 달랐다. 화이트의 팬덤이 이미 있었다. 《더 베어》 본 사람들은 그에게 감정적 연결이 있었다. 그 연결 위에 브랜드가 올라탔다. 주목 10점, 연결 10점. 10 × 10 = 100.
"마케팅이 안 돼요"는 진단이 아니다. "어디가 0이에요?"가 진단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0인 걸 알았다. 그 0을 어떻게 채우나?
대부분은 AARRR(에이에이알알알)을 꺼낸다. 획득(Acquisition), 활성화(Activation), 유지(Retention), 추천(Referral), 수익(Revenue). 다섯 칸에 자기 비즈니스를 끼워넣으려 한다. "우리 획득은 인스타그램이고, 활성화는 첫 구매고..."
멈춰라. AARRR은 데이브 맥클루어(Dave McClure)가 2007년에 만들었다. 500 스타트업스(500 Startups)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분석하기 위해서. 투자자가 여러 스타트업을 비교하기 위해 만든 도구다. 당신은 투자자가 아니다. 당신은 당신 비즈니스 하나를 설계해야 한다. 남의 프레임워크에 내 비즈니스를 맞추는 순간, 진짜 문제는 안 보인다.
퍼널 설계의 본질은 이거다: 고객이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충성 고객이 되기까지, 그 사이에 어떤 갭들이 있는가? 그 갭을 어떻게 건너게 할 것인가? AARRR은 남의 답이다. 이 질문에 당신이 직접 답해야 한다.
이 시리즈는 그 답을 찾는 법을 다룬다.
2편에서는 왜 고객이 중간에 이탈하는지 다룬다. 마찰에는 6가지 종류가 있다. 가격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가격을 낮춰도 안 팔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3편에서는 그 마찰을 어떻게 쪼개는지 다룬다. 300만 원짜리 소파 앞에서 "나중에요"라고 말하는 고객을 "일단 이것부터 해볼게요"로 바꾸는 법이다.
4편에서는 실제로 작동한 도구들을 다룬다. 7달러(배송비만 받고 책을 무료로 주는 게 왜 1억 달러 비즈니스가 되는지. 1달러 트라이얼이 왜 500달러짜리 충성 고객(LTV)을 만드는지.
AARRR을 외우면 발표는 할 수 있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 당신 퍼널의 0을 찾고, 그걸 채울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