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스택 고객 여정 지도 1편: 마케팅에서 가장 비싼 실수
2012년, 면도기 스타트업 하나가 유튜브에 광고를 올렸다. 예산 4,500달러. 창업자가 직접 나와서 카메라 앞에서 떠들었다. "Our blades are f**king great." 48시간 만에 12,000건 주문이 들어왔다. 5년 뒤 유니레버가 이 회사를 10억 달러에 샀다. Dollar Shave Club 이야기다.
2017년, 펩시가 광고를 하나 만들었다. 켄달 제너가 시위대에게 펩시를 건넨다. 2억 뷰를 넘겼다. 48시간 만에 내렸다. 조회수는 폭발했는데 구매 의향은 오히려 떨어졌다. 브랜드 호감도 조사에서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둘 다 바이럴됐다. 둘 다 화제가 됐다. 한쪽은 10억 달러짜리 회사가 됐고, 한쪽은 마케팅 실패 사례집에 실렸다.
차이가 뭘까.
마케팅을 배우면 AIDA를 배운다. Attention, Interest, Desire, Action. 1898년에 나온 모델이다. 126년 됐다. 주목을 끌고, 관심을 유발하고, 욕구를 만들고, 행동하게 한다. 깔끔하다. 파워포인트에 넣기 좋다.
문제는 이 모델이 세 가지를 가정한다는 거다.
첫째, 고객이 일직선으로 움직인다고 가정한다. Attention에서 Interest로, Interest에서 Desire로. 현실의 고객은 되돌아가고, 건너뛰고, 루프를 돈다.
둘째, 고객이 진공 상태에서 시작한다고 가정한다. 아무 경험 없이 빈 도화지로 온다고 본다. 현실의 고객은 경쟁사에서 실망했거나, 이미 만족하는 제품이 있거나, 이 카테고리 자체를 불신한다.
셋째, 모든 고객이 같은 방식으로 결정한다고 가정한다. 콜라 하나 고르는 3초와 자동차 한 대 고르는 6개월이 같은 여정 지도 위에 있다.
펩시 광고는 이 세 가지를 전부 무시했다. 누구한테 말하는지 몰랐다. 기존 펩시 고객한테 하는 말인지, 새 고객한테 하는 말인지, 코카콜라 마시던 사람한테 하는 말인지. "사회 정의"라는 메시지가 탄산음료를 사는 순간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2억 명이 봤는데 그중 펩시를 살 사람이 몇 명인지.
Dollar Shave Club은 달랐다. 타겟이 명확했다. 질레트에 질린 사람들. 면도기 사러 갈 때마다 진열대 앞에서 한숨 쉬던 사람들. "왜 이렇게 비싸지?"라고 중얼거리던 사람들. 경쟁사에 실망한 사람들이었다. 이미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대안만 있으면 바꿀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다.
광고 메시지도 거기에 맞췄다. "면도기에 왜 그렇게 돈을 써?" 질레트 고객이 속으로 하던 말을 대신 해줬다. "우리 면도날 좆나 좋음." 복잡한 설명 없다. 5중날이 어쩌고, 진동 헤드가 어쩌고, 그런 거 없다. "싸고 좋다." 끝이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왜 같은 '바이럴'인데 결과가 다를까.
답은 간단하다. 조회수는 지표가 아니다. 지표처럼 생겼을 뿐이다.
퍼널은 곱셈이다. 노출 × 관심 × 욕구 × 행동. 각 단계의 전환율이 곱해진다. 중간에 0이 하나라도 있으면 최종 결과는 0이다. 노출이 2억이든 20억이든 상관없다. 0을 곱하면 0이다.
펩시는 노출을 2억 찍었다. 그런데 그 2억 중에 "펩시를 살 이유"를 느낀 사람이 몇 명인가. 켄달 제너가 시위대에게 펩시를 건네는 장면을 보고 "아, 나도 펩시 마셔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몇 명인가. 관심에서 욕구로 넘어가는 구간이 0에 가까웠다. 2억 × 0 = 0이다.
Dollar Shave Club은 노출이 적었다. 상대적으로. 그런데 본 사람 중 상당수가 "질레트 구독 끊고 여기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환율이 높았다. 작은 수 × 높은 전환율이 큰 수 × 0보다 크다.
마케팅에서 가장 비싼 실수는 노력을 더 하는 게 아니다. 틀린 곳에 노력하는 거다.
틀린 곳이 어딘지 알려면 고객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AIDA의 어느 단계에 있는지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고객이 어떤 경험을 갖고 왔는지, 얼마나 급한지, 이 제품이 그 사람한테 큰 결정인지 작은 결정인지를 알아야 한다.
면도기는 작은 결정이다. 잘못 사도 한 달 쓰고 바꾸면 된다. 이런 제품은 "일단 써봐"가 통한다. 자동차는 큰 결정이다. "일단 사봐"가 안 통한다. 같은 메시지가 어떤 제품에선 먹히고 어떤 제품에선 안 먹힌다.
경쟁사에서 실망하고 온 사람과 처음 이 카테고리를 접하는 사람은 다르다. 실망하고 온 사람은 "뭐가 다른데?"를 묻는다. 처음 온 사람은 "이게 뭔데?"를 묻는다. 같은 질문이 아니다. 같은 답을 주면 안 된다.
지금 급한 사람과 언젠간 살 사람은 다르다. 급한 사람한테 교육 콘텐츠를 보여주면 이탈한다. 읽을 시간이 없다. 언젠간 살 사람한테 "지금 바로 구매"를 보여주면 무시당한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이걸 한 장의 지도에 담으면 어떻게 될까.
기존 고객 여정 지도는 2차원이다. 단계(Awareness → Consideration → Purchase)가 있고, 각 단계에 터치포인트가 있다. 여기에 축을 더 추가하면 어떻게 될까.
축 하나: 동기의 강도. 잠재적으로 필요한 사람, 필요를 인식한 사람, 지금 찾고 있는 사람, 당장 급한 사람. 네 단계다.
축 둘: 이전 경험. 처음 온 사람, 알지만 안 써본 사람, 경쟁사 쓰고 만족 중인 사람, 경쟁사 쓰고 실망한 사람, 우리 제품 쓰고 만족한 사람, 우리 제품 쓰고 실망한 사람, 이 카테고리 자체를 불신하는 사람. 일곱 가지다.
축 셋: 구매 단계. AIDA의 네 단계.
축 넷: 관여도. 저관여, 중관여, 고관여, 쾌락적 고관여. 네 가지다.
이 네 축을 조합하면 수백 개의 세그먼트가 나온다. 전부 다룰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우리 고객은 이 중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마케팅은 그 세그먼트에 맞는가"를 점검하는 것이다.
펩시는 이걸 안 했다. 2억 명한테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Dollar Shave Club은 했다. "질레트에 실망한, 지금 대안을 찾는, 저관여 제품 고객"이라는 좁은 세그먼트에 정확히 맞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시리즈에서 나는 이 4차원 프레임워크를 하나씩 뜯어볼 것이다. 각 축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조합하는지, 실제로 어떻게 쓰는지.
다음 편에서는 첫 번째 질문을 던진다. 고객은 진공에서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서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