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스택 고객 여정 지도 3편: 아픈 사람과 나아지고 싶은 사람은 다르다


바벨칩 마케팅팀에 두 명의 잠재 고객이 있다.

첫 번째 사람. 김과장. 대기업 7년차. 영어 못해도 살 만했다. 근데 요즘 신경 쓰인다. 외국계 이직하면 연봉이 두 배라는데. 해외 컨퍼런스 가면 멍하니 앉아 있다가 온다. "언젠간 영어 해야지"라고 매년 1월에 생각한다. 12월에도 같은 생각을 한다.

두 번째 사람. 박대리. 중견기업 4년차. 3개월 뒤에 미국 지사 파견이 확정됐다. 영어 못하면 간다고 해도 창피해서 못 간다. 밤에 잠이 안 온다. 유튜브에서 "3개월 영어 완성"을 검색한다. 광고가 뜨면 일단 클릭한다.

두 사람 다 경쟁사 실망자다. 인강도 해봤고, 전화영어도 해봤다. 안 됐다. 이전 경험은 같다. 그런데 이 두 사람한테 같은 광고를 보여주면 반응이 같을까?

김과장은 "오 신기하네" 하고 스크롤을 내린다. 박대리는 결제 버튼을 누른다.

차이가 뭘까. 동기의 강도다.


스타트업에서 자주 쓰는 구분이 있다. 진통제(Painkiller)와 비타민(Vitamin). 진통제는 지금 아픈 걸 멈춰준다. 비타민은 나중에 더 건강해지게 해준다. 투자자들은 진통제를 좋아한다. 아픈 사람은 돈을 내서라도 고통을 멈추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구분이 제품 관점이라는 거다. 같은 제품이 어떤 사람한테는 진통제고, 어떤 사람한테는 비타민이다.

바벨칩을 보자. 박대리한테 바벨칩은 진통제다. 3개월 뒤 미국 가는데 영어 못하면 죽는다. 지금 아프다. 김과장한테 바벨칩은 비타민이다. 영어 잘하면 좋겠지. 근데 당장 안 해도 죽지는 않는다.

제품은 같다. 270만원짜리 뇌 패치. 그런데 고객에 따라 진통제가 되기도 하고 비타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제품은 진통제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반쪽짜리 분석이다. "이 고객한테 우리 제품은 진통제입니다"가 맞다.


동기의 강도를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잠재 동기(Latent Motivation). 문제가 있지만 본인이 모르거나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다. 김과장보다 더 앞 단계다. "나 영어 괜찮은데?"라고 생각하는 사람. 외국인 만나면 피하면 되고, 해외 컨퍼런스는 안 가면 된다. 불편한 줄 모른다. 이 사람들한테는 광고가 안 먹힌다. 문제를 인식시키는 게 먼저다. "당신이 영어 때문에 놓치고 있는 기회들"—이런 콘텐츠가 필요하다. 근데 이 단계 사람을 전환시키는 건 비용이 많이 든다.

두 번째, 인식된 동기(Recognized Motivation). 문제가 있다는 건 안다. 근데 해결하려고 움직이지는 않는다. 김과장이 여기다. "영어 해야 하는데"라고 매년 생각한다. 매년 안 한다. 이 사람들한테 제품 설명을 아무리 해도 행동으로 안 넘어간다. 긴급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그룹을 움직이려면 외부에서 트리거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 달만 50% 할인"—이런 게 먹히는 이유다. 원래 급하지 않은 사람한테 인위적으로 급함을 만든다. 근데 270만원짜리 제품에 50% 할인을 걸면 브랜드가 망가진다. 다른 트리거가 필요하다.

세 번째, 활성 동기(Active Motivation). 지금 해결책을 찾고 있다. 검색한다. 비교한다. 후기를 읽는다. 박대리 직전 단계다. 아직 "3개월 뒤 미국"은 아니지만, 올해 안에는 영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사람들이 검색할 때 바벨칩이 보여야 한다. "영어회화 추천", "직장인 영어 공부 방법"—이런 키워드에 잡혀야 한다. 이 단계 사람들은 정보를 원한다. 비교 콘텐츠, 후기, 상세 설명. "왜 바벨칩인가"를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네 번째, 긴급 동기(Urgent Motivation). 당장 해결 안 하면 큰일난다. 박대리다. 3개월 뒤 미국. 영어 안 되면 창피해서 못 간다. 이 사람들은 가격을 덜 본다. 효과와 속도를 본다. "270만원이요? 비싸네요"가 아니라 "270만원이요? 3개월 안에 되긴 해요?"가 반응이다. 이 그룹한테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3개월 완성. 지금 시작하면 OO월에 끝남." 결제 버튼 크게. 전화번호 크게. 상담 예약 바로 가능하게.


같은 경쟁사 실망자인 김과장과 박대리가 왜 다르게 반응하는지 이제 보인다. 이전 경험은 같지만 동기의 강도가 다르다.

김과장은 인식된 동기 단계다. "영어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지만 급하지 않다. 바벨칩 광고를 봐도 "나중에 알아봐야지" 하고 넘어간다. 270만원은 "나중에"를 정당화하기 좋은 이유가 된다.

박대리는 긴급 동기 단계다. 3개월 뒤가 데드라인이다. 바벨칩 광고를 보면 "이거 진짜 되나?"가 첫 반응이다. 270만원은 문제가 아니다. 3개월 안에 되는지가 문제다.

두 사람한테 같은 광고를 보여주면 효율이 떨어진다. 김과장한테 맞춘 광고는 천천히 교육하고 신뢰를 쌓는다. 박대리한테 맞춘 광고는 "3개월 안에 됩니다"를 전면에 내세운다.

바벨칩 마케팅팀이 초기 자원이 한정돼 있다면 어디를 노려야 할까? 긴급 동기 + 경쟁사 실망자다. 이 조합이 최고의 전환율을 만든다.


여기서 실무적 문제가 생긴다. 긴급 동기 고객은 어디 있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그들이 검색할 때 잡는다. 긴급한 사람은 검색을 한다. "3개월 영어 회화", "빠른 영어 공부", "영어 속성". 이런 키워드에 바벨칩이 있어야 한다. 검색 광고(SEM)가 여기서 중요해진다. 노출 광고를 아무리 많이 해도 긴급하지 않은 사람한테 보여주면 전환이 안 된다.

둘째, 긴급성을 만든다. 원래 급하지 않은 사람을 급하게 만든다. "이번 기수 마감 임박", "3월 시작반 모집 중 (4월반은 미정)"—이런 식이다. 희소성과 마감을 활용한다. 근데 이건 조심해야 한다. 맨날 "마감 임박"이면 아무도 안 믿는다. 진짜 마감이 있어야 한다.

바벨칩 같은 고관여 제품은 대부분 활성-긴급 동기 단계에서 전환이 일어난다. 잠재-인식 동기 단계에서는 바로 전환이 안 된다. 그래서 이 단계 고객들은 리드로 잡아서 너처링(Nurturing)해야 한다. 뉴스레터 구독시키고, 무료 콘텐츠 주고, 관계를 쌓다가 그들이 활성 동기로 넘어갈 때 바벨칩을 다시 보여준다.


동기의 강도는 고정된 게 아니다.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한다.

김과장도 언젠가 긴급해진다. 갑자기 외국계 이직 제안이 올 수 있다. 해외 지사 발령이 날 수 있다. 그때 김과장은 박대리가 된다. 바벨칩을 기억하고 있으면 검색한다. 기억 못하면 다른 데 간다.

그래서 인식된 동기 단계 고객을 완전히 무시하면 안 된다. 지금 당장 전환시키려 하지 말고, 기억에 심어놓아야 한다. "영어 급해지면 바벨칩"—이 연결고리가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급해졌을 때 검색창에 "바벨칩"을 친다.

마케팅에서 어려운 건 "지금 안 사는 사람"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무시하면 미래 고객을 잃는다. 매달리면 현재 자원을 낭비한다. 동기의 강도를 보면 이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이전 경험과 동기의 강도. 두 축이 교차하면 이미 상당히 정교한 세그먼트가 나온다.

경쟁사 실망자 + 긴급 동기: 최고의 타겟. 지금 광고비 써라.

경쟁사 실망자 + 인식된 동기: 리드로 잡아서 너처링. 급해질 때까지 관계 유지.

카테고리 회의론자 + 긴급 동기: 급하긴 한데 바벨칩 안 믿음. 제3자 증거로 공략하거나 포기.

첫 경험자 + 잠재 동기: 시장을 키우는 장기 투자. 당장 ROI 기대하지 마라.

이렇게 매트릭스를 그리면 "마케팅이 안 돼요"라는 막연한 문제가 "어느 세그먼트에서 전환이 막히는가"라는 구체적 질문으로 바뀐다.

다음 편에서는 세 번째 축을 다룬다. 270만원짜리 바벨칩과 2700원짜리 영어단어 앱은 같은 규칙으로 팔리지 않는다. 콜라 하나 고르는 3초와 뇌에 붙이는 패치를 고르는 3개월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관여도가 달라지면 마케팅의 문법 자체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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