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만나지도 않은 사람에게 청혼하기
마케팅 책을 읽다 보면 이상한 현상을 경험한다. 어떤 책은 스토리텔링이 전부라고 말한다. 다른 책은 숫자와 데이터가 답이라고 한다. 또 다른 책은 브랜드 철학이 중요하다고 외친다. 셋 다 설득력 있다. 셋 다 증거가 있다. 셋 다 맞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똑같은 비즈니스인데 어떤 전략가는 감성을 말하고, 어떤 전략가는 퍼포먼스를 말한다. 둘 다 성공 사례를 들이민다. 그러면 우리는 혼란스러워진다. 대체 뭐가 맞는 건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혼란을 '마케팅은 정답이 없다'는 말로 정리한다. 틀렸다. 정답은 있다. 단지 질문에 시간이 빠져 있을 뿐이다.
사라진 차원
물리학에서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에 그리면 왜곡이 생긴다. 원근이 무너지고, 멀리 있는 것과 가까이 있는 것이 겹쳐 보인다. 마케팅 전략을 놓고 벌이는 논쟁이 정확히 이렇다. 시간축을 제거한 채 전략들을 한 평면에 늘어놓으니, 전부 겹쳐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는 시간이 두 개 흐르고 있다. 하나는 고객의 시간이다. 한 사람이 당신의 제품을 처음 보고, 관심을 갖고, 구매를 고려하는 여정. 유진 슈워츠(Eugene Schwartz)는 이것을 5단계 인식(Awareness) 프레임워크로 정리했다. 다른 하나는 시장의 시간이다. 시장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포화되고, 죽어가는 과정. 슈워츠는 이것을 시장 성숙도(Sophistication)로 설명했다.
이 두 시간축을 대입하는 순간, 모든 전략은 제자리를 찾는다. 더 이상 모순이 아니다. 각각의 전략은 특정 시점에서만 작동하는 정밀한 도구가 된다.
고객의 시간
결혼을 하려면 청혼을 해야한다는 명제- 맞다.
근데 아직 만나지도 않은 사람에게 청혼하면 어떻게 될까. 실패한다.
타이밍이 틀렸기 때문이다. 마케팅도 같다. 고객이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모르고 메시지를 던지면,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거부당한다.
1단계 고객은 문제조차 모른다. 이 사람에게 제품을 말하면 실패한다. 뇌가 거부한다. 관련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건 바이팅(Biting)이다. 예측을 파괴하는 스토리. 충격적인 뉴스. 인지 방어막을 뚫는 강력한 훅. 제품은 나중 문제다.
2~3단계 고객은 문제를 안다. 하지만 해결책이 뭔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여러 선택지를 비교하는 중이다. 이 사람에게는 세계관(Worldview)을 보여줘야 한다. 왜 기존 방식은 불완전한지, 왜 당신의 접근이 더 나은지. 경쟁사를 '낡은 것'으로 규정하는 디포지셔닝(De-positioning)이 작동하는 구간이다.
4~5단계 고객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뿐이다. 이 사람에게 더 많은 설득은 소음이다. 필요한 건 오퍼(Offer)다. 가격, 할인, 희소성, 보증. 마찰을 제거하고 행동을 트리거하는 장치.
초기 고객에게는 감정이 정답이고, 후기 고객에게는 계산이 정답이다.
그래서 '감성 마케팅이 맞다' vs '퍼포먼스 마케팅이 맞다'는 싸움은 틀린 질문이다.
둘 다 맞다. 시점만 다를 뿐이다.
시장의 시간
고객의 시간만 있는 게 아니다. 시장에도 나이가 있다. 그리고 시장의 나이에 따라 먹히는 전략이 완전히 바뀐다.
초기 시장은 단순하다. 경쟁자가 없거나 적다. 고객은 아직 배가 고프다. 이때는 '무엇(What)'을 파는지만 크게 외치면 된다. "살이 빠집니다." "더 빨리 빠집니다." 기능이 왕이다. 복잡한 스토리는 필요 없다. 혜택을 크고 명확하게 말하는 쪽이 이긴다.
시장이 성장하면 상황이 바뀐다. 경쟁자가 몰려든다. 모두가 비슷한 약속을 한다. 고객은 지친다. 믿지 않게 된다. 차단 효과가 발생한다. 이제 '무엇'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떻게(How)'를 보여줘야 한다. 새로운 메커니즘(Unique Mechanism)이 필요하다. "그냥 살이 빠지는 게 아니라, 이 특정 성분이 지방을 분해해서 배출합니다." 구체성과 인그리디언트 브랜딩이 힘을 발휘하는 구간이다.
시장이 말기에 접어들면 더 이상 기술적 차이가 없다. 모두가 비슷해진다. 고객은 기능도, 메커니즘도 안 믿는다. 이때는 '누구(Who)'를 위한 것인지를 말해야 한다. 정체성(Identification)과 세계관을 파는 단계다. 애플(Apple)의 "Think Different", 리퀴드 데스(Liquid Death)의 "Death to Plastic"처럼. 제품이 아니라 "우리 편이 될 것인가?"를 묻는 마크(Mark) 전략만이 작동한다.
시장 초기에는 제품력이 마케팅이고, 시장 말기에는 철학이 마케팅이다.
5단계 시장에서 1단계 전략을 쓰면 망한다. 아무리 기능을 나열해도 먹히지 않는다. 시장의 나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길
바이트마크(Bitemark)가 추구하는 원칙은 간단하다.
"There should be one– and preferably only one --obvious way to do it."
문제를 해결하는 명백한 방법은 하나, 가급적이면 '유일'해야 한다.
상황이 주어지면 정답은 수학처럼 도출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원칙은 하나지만, 전략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원칙은 욕망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건 불변한다.
하지만 그 연결 방식은 시간축에 맞춰 최적화되어야 한다.
진단은 두 질문에서 시작한다.
- 지금 고객은 내 브랜드를 얼마나 아는가?
- 시장에 경쟁자는 얼마나 많은가?
이 두 좌표가 정해지면 전략은 자동으로 도출된다.
무지한 고객과 포화된 시장이 만나면? 강력한 바이팅과 적(Enemy) 설정이 필요하다. 기존 프레임을 부수고 진입해야 한다. 달러 쉐이브 클럽(Dollar Shave Club)이 그랬다.
인지한 고객과 초기 시장이 만나면? 기능과 오퍼를 명확히 하여 빠르게 점령해야 한다. 초기 드롭박스(Dropbox)가 그랬다.
인지한 고객과 포화된 시장이 만나면? 새로운 메커니즘과 정체성으로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애플이 그렇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것 같은" 혼란은, 서로 다른 시간대의 전략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비교하기 때문에 생긴다.
시간축을 대입하는 순간 모든 전략은 제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지금 해야 할 단 하나의 행동만이 남는다.
공학으로서의 마케팅
마케팅을 예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불완전하다. 마케팅은 공학에 가깝다. 입력이 주어지면 출력이 결정되는 시스템이다. 변수는 시간이다.
시간을 제거하면 마케팅은 점술이 된다. 운에 맡기고, 직관을 믿고, A/B 테스트에 의존한다. 시간을 복원하면 마케팅은 수학이 된다. 현재 위치를 측정하고, 필요한 전략을 계산하고, 정확히 실행한다.
바이트마크가 추구하는 건 후자다. 어제의 혁신은 오늘의 상식이고, 내일의 지루함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마케팅은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다. 시간 위에 전략을 배치하는 일이 된다. 그리고 그 일은 정확히 수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