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는 사람의 뇌는 고장나 있다
"우리 제품 정말 좋은데 왜 안 팔릴까요?" 이 질문을 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끝났다.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는 확신 자체가 독이다. 생산자의 뇌는 구조적으로 팔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 투입한 시간, 들인 원가, 해결한 기술적 난제들이 뇌를 점령한다. 그래서 "이 정도면 팔리겠지"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고객은 당신의 노고에 돈을 내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삶의 문제가 해결될 때만 지갑을 연다.
대부분의 창업자는 "고객 중심"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페르소나도 만들고, 인터뷰도 하고, 리뷰도 읽는다. 그런데도 못 판다. 왜냐하면 고객 관점은 태도가 아니라 기술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 된다고 해서 판매가 되는 게 아니다. 생산자의 뇌를 끄고 고객의 뇌로 접속하는 공학적 방법론이 필요하다. 이건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훈련과 프레임워크의 영역이다.
하버드의 테드 레빗(Ted Levitt)은 이걸 '마케팅 근시안(Marketing Myopia)'이라고 불렀다. 철도 회사는 자신을 '기차 사업'으로 정의해서 망했다. 만약 '운송 사업'으로 봤다면 트럭과 항공으로 확장했을 것이다. 생산자는 자기가 만든 물리적 실체에 갇힌다. 고객은 그 실체를 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해결해야 할 '과업(Job)'만 본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의 밀크셰이크 사례가 정확히 이걸 보여준다. 아침 출근길에 밀크셰이크를 사는 사람은 맛 때문이 아니다. 지루한 운전 시간을 달래고, 오전 10시까지 배고프지 않게 해줄 도구가 필요해서 그걸 '고용'한다. 이때 경쟁자는 버거킹의 다른 쉐이크가 아니라 바나나, 베이글, 도넛이다.
생산자는 '기능'을 팔지만, 고객은 '과업 해결'을 산다.
제품이 아니라 맥락을 파는 것. 이게 첫 번째 객관화 기술이다. "우리 제품은 어떤 기능이 있는가?"가 아니라 "고객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고통을 없애기 위해 우리를 고용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의 차이가 매출의 차이를 만든다.
두 번째는 '지식의 저주'를 깨는 기술이다. 생산자는 자기 제품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고객도 알 거라고 착각한다. 전설적인 카피라이터 유진 슈워츠(Eugene Schwartz)는 고객을 5단계로 나눴다. 무지(Unaware) 단계는 문제조차 모른다. 문제 인식(Problem Aware)은 문제는 알지만 해결책은 모른다. 해결책 인식(Solution Aware)은 해결책은 알지만 당신의 제품은 모른다. 제품 인식(Product Aware)은 당신을 알지만 확신이 없다. 가장 인식(Most Aware)은 살 준비가 된 상태다.
생산자는 대부분 5단계 언어를 쓴다. "우리 스펙이 최고예요." 그런데 고객의 90%는 1~2단계에 있다. 그들에게 스펙을 말하면 뇌가 차단한다. 객관화란 나의 언어 레벨을 고객의 인식 레벨로 강제로 낮추는 기술이다. 이건 쉬운 말로 바꾸는 게 아니다. 고객이 현재 서 있는 인지적 위치를 정확히 진단하고, 거기서부터 한 걸음씩 데려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물리적 스펙을 가치 방정식으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생산자는 투입된 원가와 노력으로 가격을 매긴다. 고객은 자신이 얻을 결과와 치러야 할 희생의 비율로 가치를 계산한다. 알렉스 호르모지(Alex Hormozi)의 공식에 따르면 가치는 '꿈의 결과 × 성공 가능성'을 분자로, '시간 지연 × 노력과 희생'을 분모로 나눈 값이다. 넷플릭스는 비디오 대여점보다 영화가 많아서 이긴 게 아니다. 매장에 가는 노력과 연체료의 공포를 제거했기 때문에 이겼다. 분모를 0에 수렴시키는 것. 이게 진짜 혁신이다.
고객의 눈으로 본다는 건 기능을 추가하는 게 아니라 마찰을 제거하는 것이다. 생산자는 "더 많은 기능을 넣으면 더 비싸게 팔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고객은 "이거 쓰려면 시간이 얼마나 들지? 배우기 어렵지는 않을까?"를 먼저 계산한다. 객관화는 고객의 계산기를 내 머릿속에 설치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상품형과 상품해를 구분하는 기호학적 기술이다. 60도짜리 독한 위스키라는 물리적 실체는 똑같다. 술꾼에게는 '빨리 취하는 도구'다. 위스키 애호가에게는 '물을 타서 맛을 조절하는 통제권'이다. 제품은 중립적이다. 가치는 제품 안에 들어있지 않다.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해석이 가치다. 판매자의 기술은 이 제품을 어떤 의미로 포지셔닝할지 타겟에 맞춰 재정의하는 것이다.
제품은 중립적이다. 의미는 고객이 만든다.
생산자는 "내 제품은 이런 거야"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고객은 자기 삶의 맥락에 맞춰 의미를 재구성한다. 같은 운동화가 누구에겐 패션 아이템이고, 누구에겐 달리기 도구다. 객관화는 내 정의를 버리고 고객의 재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뇌의 필터링을 뚫는 바이팅 기술이다. 고객의 뇌는 에너지 효율을 위해 뻔한 정보를 소음으로 처리한다. "우리 제품은 혁신적입니다" 같은 말은 뇌가 자동으로 삭제한다. 면도기 회사가 "우리 면도날은 부드러워요"라고 하면 뇌는 차단한다. 달러쉐이브클럽(Dollar Shave Club)은 "면도기에 왜 20달러나 써? 그 돈이면 다른 걸 해"라고 했다. 고객의 예측이 깨진다. 뇌가 반응한다.
객관화란 내 제품 설명서가 고객의 뇌에서 스팸 필터에 걸릴지 아닐지를 미리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이다. 생산자 입장에서의 '좋은 설명'은 고객의 뇌에서는 '지루한 광고'로 분류된다. 예측 오차를 만들어야 한다. 고객이 가진 기존의 예측을 파괴해야 뇌가 깨어난다.
이 다섯 가지가 없으면 생산자는 영원히 "내 제품은 좋은데 왜 몰라주지?"라는 함정에 빠진다. 고객 중심은 마음가짐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이다. 제품이 아니라 맥락을 파는가. 내 말이 아니라 고객의 언어 레벨을 쓰는가. 스펙이 아니라 마찰 제거를 팔고 있는가. 예측 가능한 소음이 아니라 뇌를 깨우는 신호를 보내는가.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파는 사람의 뇌가 정상 작동한다.
결국 파는 사람의 뇌는 처음부터 고장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잘못된 좌표계를 쓰고 있을 뿐이다. 생산자의 좌표계에서 고객의 좌표계로 변환하는 기술. 이게 전부다. 좌표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제품도 영원히 판매자의 창고에 머문다. 좌표를 바꾸는 순간, 좋은 제품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진짜 팔리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