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속의 고객: 왜 당신의 가장 좋은 고객은 말을 안 하는가

그림자 속의 고객: 왜 당신의 가장 좋은 고객은 말을 안 하는가

이런 경우를 본다. 1년 동안 댓글 한 번 없던 사람이 어느 날 87만 원짜리 상품을 산다. 환불 문의도 없다. 추가 질문도 없다. 그냥 산다. 반면 지난 3개월 동안 포스팅마다 댓글 달고, DM으로 "언제 할인하나요?" 물어보던 사람은 아직도 무료 콘텐츠만 본다.

이상한 일이다. 참여도 높은 사람이 고객이 될 것 같은데 현실은 정반대다. 업계에선 이런 사람들을 "Slow Burn 고객"이라 부른다. 천천히 데워지는 고객. 하지만 난 다르게 본다. 이들은 느린 게 아니다. 마크를 형성하고 있는 거다.

바이팅은 3초의 게임이다. 클릭하게 만들고, 주목하게 만들고, "오, 이거 뭐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 대부분의 마케터는 여기서 멈춘다. 클릭률 올리고, 참여율 높이고, 댓글 수 늘리는 데만 집중한다. 근데 마크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마크는 "특정 상황에서 자동으로 당신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건 한 번의 바이팅으로 안 된다. 반복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일관성이 필요하다. 그림자 속의 고객은 바로 이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이들은 클릭 안 한다. 좋아요 안 누른다. 댓글 안 단다. GA4에도 안 잡힌다. 페이스북 픽셀은 이들을 '이탈'로 분류한다. 리타게팅 오디언스에서 제외된다. 그런데 이들의 머릿속에선 뭔가가 쌓이고 있다. 당신이 쓴 글 하나하나가, 올린 영상 하나하나가, 보낸 뉴스레터 하나하나가 층층이 쌓인다.

"이 사람 = 마케팅 전문가"라는 등식이 점점 강해진다. 별도의 메모 없이, 북마크 없이, 구독 알림 없이도 이 연결이 강화된다. 뇌는 원래 그렇게 작동한다. 반복 노출은 명시적 기억 없이도 암묵적 연결을 만든다.

그러다 어느 날 트리거가 발동한다. "나도 이제 진짜 마케팅 공부를 해야 할 때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이름이 있다. 검색하지 않는다. 비교하지 않는다. 리뷰 안 본다. 그냥 당신 사이트에 들어가서 가장 비싼 상품을 산다. 이게 마크다.

문제는 우리의 측정 시스템이 이걸 못 본다는 거다. 구글 애널리틱스는 "Direct / None" 트래픽으로만 보여준다. 퍼널 분석에선 "이탈 후 재방문"으로 나온다. 어트리뷰션 모델은 "마지막 클릭"에만 공을 돌린다. 그 전에 6개월 동안 쌓인 마크는 아무도 측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케터들은 계속 바이팅만 최적화한다. 더 자극적인 썸네일, 더 클릭베이트한 제목, 더 화려한 첫 문장. 참여율은 올라가는데 전환은 안 된다. 댓글은 늘어나는데 매출은 그대로다. 왜? 바이팅으로 모은 사람들은 클릭은 하지만 사지는 않으니까.

측정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측정은 해야 한다.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숫자만 보면서 직관을 죽이지 마라. 대시보드가 "실패"라고 말하는 콘텐츠가 실은 가장 강력한 마크를 만들고 있을 수 있다. 참여율 0.3%인 글이 6개월 뒤 87만 원짜리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 숫자는 바이팅을 측정하지만, 마크는 측정하지 못한다.

바이팅이 제대로 되었다면, 그 마크를 통해 수확할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마케터가 바이팅과 마크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거다. 바이팅으로 사람 모으고, 나중에 마크 심으면 되겠지. 아니다. 바이팅 그 자체가 마크의 씨앗이어야 한다. 3초 안에 당신의 본질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반복 노출이 마크로 쌓인다.

정작 사는 사람들은 그림자 속에 있다. 측정되지 않고, 추적되지 않고, 타겟팅되지 않는다. 그들은 조용히 당신의 콘텐츠를 보고, 조용히 마크를 형성하고, 조용히 산다. 그리고 당신은 그들이 왜 샀는지 영영 모른다. 대시보드엔 그냥 "Direct / None"으로만 뜬다.

마케팅 대시보드는 거짓말을 한다. 높은 참여율이 좋은 신호라고, 댓글 많은 게 성공이라고, 클릭률이 전부라고. 하지만 가장 좋은 고객은 대시보드에 안 나타난다. 이들은 숫자가 아니라 마크로만 존재한다. 당신의 머릿속이 아니라 고객의 머릿속에만.

그 고객은 아마 지금도 당신의 글을 보고 있을 거다. 클릭은 안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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