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벽돌공: 대성당은 공짜가 아니다
자기계발서의 고전 《크게 생각할수록 크게 이룬다(The Magic of Thinking Big)》에는 세 명의 벽돌공 이야기가 나온다. 데이비드 슈워츠(David Schwartz)가 1959년에 쓴 이 우화는 지금도 강연장과 세미나실을 돌아다닌다. 행인이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냐고. 첫 번째 벽돌공은 벽돌을 쌓고 있다고 답했다. 두 번째는 시간당 9달러 30센트를 벌고 있다고 했다. 세 번째는 가슴을 펴며 말했다. 나는 세계 최대의 성당을 짓고 있다고.
세상은 언제나 세 번째 벽돌공을 찬양했다. 비전(Vision)을 가진 자. 꿈꾸는 자. 그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다. 하지만 냉혹한 자본주의의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않은 네 번째 벽돌공이 있었다. 그는 똑같은 질문에 땀을 닦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지금, 사람들이 이 대성당에 들어오기 위해 기꺼이 50달러의 입장료를 내게 만들 구조를 설계하며 벽돌을 놓고 있소."
이 차이가 비즈니스와 예술을 가른다.
세 번째 벽돌공은 훌륭한 장인(Artisan)이다. 그는 최고의 대성당을 지을 것이다. 아름다운 아치를 만들 것이다. 정교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끼워 넣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비즈니스(Business)를 모른다. 그가 지은 대성당이 아무리 웅장해도, 유지 보수 비용을 감당할 수익 모델이 없다면 그 성당은 곧 폐허가 된다. 완벽한 제품(Product)을 만들겠다는 일념은 종종 시장성을 무시한 오버 엔지니어링(Over-engineering)으로 이어진다. 제품은 위대할지 몰라도 기업은 파산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장인병 환자의 최후다. 그들은 제품에 미쳐서 비즈니스를 잊었다. 예술가가 되려다가 부도난 사업가가 되었다.
네 번째 벽돌공은 알고 있었다. 벽돌(Product)과 대성당의 위용(Marketing)과 입장료(Business)는 분리될 수 없는 삼위일체(Trinity)라는 사실을 말이다. 제품은 튼튼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이것은 기본값이다. 마케팅은 이것이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라 신의 집이자 세계 최대의 성당임을 알린다. 사람들이 줄을 서게 만드는 이유(Why)를 제공한다. 그리고 비즈니스는 그 줄 선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성당을 유지하고 벽돌공의 임금을 지불하고 다음 성당을 지을 자본을 만드는 시스템이다.
네 번째 벽돌공은 벽돌 하나를 놓을 때마다 시뮬레이션한다. 이 기둥의 조각이 입장료를 10달러 더 올릴 가치가 있는가. 이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스타그램(Instagram)에 공유되어 마케팅 비용을 0원으로 만들 수 있는가. 그는 제품을 만들고 나서 가격을 고민하지 않는다. 가격을 받기 위해 제품을 조립한다.
이것이 공학(Engineering)과 예술(Art)의 결정적 차이다.
많은 창업가들이 착각한다. 일단 좋은 제품을 지으면 돈은 따라올 것이라고. 틀렸다. 수익 모델(Monetization)이 설계되지 않은 제품은 자선사업일 뿐이다. 네 번째 벽돌공에게 벽돌은 단순한 건축 자재가 아니다. 그것은 고객의 지불 용의(Willingness To Pay)를 높이는 트리거(Trigger)다. 벽돌 하나하나가 가격표에 숫자를 더한다. 그는 예술가가 아니라 엔지니어다. 감성이 아니라 수식으로 일한다.
제품과 마케팅은 비즈니스의 하위 함수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당신은 영원히 세 번째 벽돌공으로 남는다. 꿈은 크지만 통장 잔고는 작은 사람으로. 비전은 있지만 수익은 없는 사람으로.
"가치(Value)는 제품 안에 있지 않다. 제품과 고객의 지갑 사이, 그 긴장감 속에 있다."
만약 당신이 지금 밤새워 기능을 개발하고 상세페이지를 다듬고 있다면 멈추고 자문하라. 나는 지금 벽돌을 쌓고 있는가. 꿈을 꾸고 있는가. 아니면 수익을 설계하고 있는가. 비즈니스와 프로덕트와 마케팅은 셋이 아니다. 하나다.
입장료를 낼 생각이 없는 관객을 위해 대성당을 짓지 마라. 그것은 신앙심이 아니라 경영의 태만이다. 네 번째 벽돌공이 되라. 벽돌을 쌓으면서도 입장료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이. 예술가의 열정과 엔지니어의 냉철함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
대성당은 공짜가 아니다. 비즈니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