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지 않습니다"라고 쓰면 안 되는 이유

"비싸지 않습니다"라고 쓰면 안 되는 이유

"나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닉슨이 1973년 워터게이트 스캔들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그 뒤로 미국인들은 그를 뭐라고 기억했나? 범죄자. 논리적으로는 부정했다. 하지만 뇌는 논리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1948년 《인간의 지식: 그 범위와 한계》에서 이미 알아챘다. "이것은 파란색이 아니다"라고 말할 때, 뇌는 먼저 파란색을 떠올린다. 그런 다음 거부한다. 두 단계다. 긍정문은 한 단계면 끝나는데, 부정문은 두 번 일해야 한다. 심리언어학에서는 이걸 2단계 시뮬레이션 이론이라고 부른다. 카웁과 즈완(Kaup & Zwaan)이 2003년에 정립했다. "문이 열려 있지 않다"라는 문장을 들으면, 뇌는 먼저 열린 문을 시뮬레이션한다. 그 다음에야 닫힌 문으로 전환한다. 첫 번째 이미지가 먼저 뇌에 박힌다.

왜 이게 중요한가? 더 깊이 처리하기 때문이다. 긍정문 "문이 닫혀 있다"는 직행이다. 닫힌 문, 끝. 부정문은 우회한다. 열린 문, 아니야, 닫힌 문. 두 번 처리한다는 건 두 배로 뇌 자원을 쓴다는 뜻이다. 두 배로 기억에 각인된다는 뜻이다. 아이트래킹 연구들이 이걸 증명했다. 부정문을 들려주면 시선은 400~500밀리초 동안 '아닌 것'을 먼저 본다. 그 다음에야 '맞는 것'으로 넘어간다. 뇌가 먼저 부정당할 대상을 활성화시키고, 그 다음에 억제한다는 직접적 증거다.

마케팅에서 이건 부정 프레이밍이 더 강하게 박힌다는 뜻이다. "우리 제품은 비싸지 않습니다." 고객의 뇌에 먼저 뭐가 박히나? "비싸다." 그 다음에 "아니야"가 온다. 하지만 첫 번째 시뮬레이션은 이미 신경 회로에 흔적을 남겼다. 가격 저항이 활성화됐다. 논리적으로는 반박했지만, 감정적으로는 이미 손상됐다.

그래서 똑똑한 마케터는 이 메커니즘을 역으로 쓴다. "이건 다이어트 식품이 아닙니다." 고객 뇌에 먼저 박히는 건? 다이어트. 건강. 가벼움. 그 연상이 먼저 활성화된다. 그 다음에 부정이 오지만, 이미 긍정적 연상이 신경망에 각인됐다. 다이어트 식품이 아니라면서, 다이어트 연상을 심는다.

더 강력한 예가 있다. "이건 광고가 아닙니다." 인스타그램에서 흔히 보는 문구다. 논리적으로는 광고가 아니라고 부정한다. 하지만 뇌는 먼저 "광고"를 시뮬레이션했다. 그리고 그 순간, 역설적인 일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광고라고 인식하면 방어 기제를 올린다. 그런데 "광고가 아니다"라고 하면? 방어 기제가 내려간다. 하지만 뇌는 이미 광고의 설득 모드로 들어갔다. 부정이 오히려 설득의 문을 연 셈이다.

핵심은 이거다. 부정은 삭제가 아니다. 추가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당신은 코끼리를 떠올렸다. 부정 명령도 마찬가지다. "스팸 아님", "사기 아님", "판매 목적 아님" — 전부 먼저 그 개념을 활성화시킨다. 부정하려면 먼저 떠올려야 하니까.

바이팅 관점에서 보면, 부정 프레이밍은 양날의 검이다. "우리는 다른 스타트업과 다릅니다." 고객 뇌에 뭐가 먼저 박히나? "다른 스타트업." 실패하고, 과대포장하고, 사라지는 그 이미지. 그 연상이 먼저 활성화된다. 아무리 뒤에서 차별화를 설명해도, 첫 시뮬레이션의 흔적은 남는다. 반면, "이건 앱이 아닙니다. 당신의 두 번째 뇌입니다." 먼저 "앱"이 활성화된다. 평범하고, 삭제 가능하고, 대체 가능한 것. 그 다음 "두 번째 뇌"가 온다. 대비가 극적이다. 첫 번째 시뮬레이션이 낮은 기대치를 만들고, 두 번째가 그걸 뛰어넘는다. 부정이 점프대가 된다.

최근 신경과학 연구들은 한 가지를 더 보여준다. 부정 처리에는 뇌의 억제 메커니즘이 관여한다. "하지 마라"를 처리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실제 행동을 멈출 때 쓰는 영역과 겹친다. 부정을 이해하는 건 인지적으로 브레이크를 밟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부정문은 더 많은 주의를 요구한다. 더 많은 처리를 요구한다. 더 깊이 각인된다.

하지만 여기서 함정이 있다. 깊이 각인되는 건 부정 대상이지, 부정 자체가 아니다. "나는 실패자가 아니다"라고 매일 아침 외치면, 뇌에 박히는 건 뭔가? "실패자." 긍정 확언이 아니라 부정 확언은 역효과를 낸다. 피하고 싶은 것을 매일 시뮬레이션하는 셈이니까.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비싸지 않다", "우리는 복잡하지 않다", "우리는 위험하지 않다" — 전부 피하고 싶은 연상을 먼저 활성화시킨다. 부정하려고 꺼낸 단어가 오히려 고객 뇌에 마크를 남긴다.

그럼 언제 부정을 써야 하나? 활성화시키고 싶은 개념을 부정할 때다. "이건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 도구라는 실용성을 먼저 심는다. "이건 그냥 커피가 아닙니다" — 커피의 친숙함을 먼저 심는다. 부정 대상이 오히려 당신이 원하는 연상일 때, 2단계 시뮬레이션이 유리하게 작동한다.

가장 강력한 부정은 경쟁자를 겨냥한다. "이건 또 하나의 AI 앱이 아닙니다." 고객 뇌에 먼저 뭐가 박히나? "또 하나의 AI 앱" — 범용적이고, 교체 가능하고, 별로 특별하지 않은 것. 그 이미지가 경쟁자들에게 붙는다. 당신은 그 범주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부정이 포지셔닝 도구가 된다.

뇌는 부정을 두 번 처리한다. 이건 버그가 아니다.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이다. 닉슨은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말해서 범죄자로 기억됐다. 하지만 누군가는 "단순한 검색 엔진이 아니다"라고 말해서 세상을 바꿨다. 차이는 뭘 부정하느냐에 있다.

부정하고 싶은 것을 부정하면 그게 박힌다. 연상시키고 싶은 것을 부정하면 그게 박힌다. 뇌는 "아니다" 앞에 오는 단어를 먼저 처리한다. 그 단어가 당신의 무기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을 쏘는 총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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