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바이팅2: 적을 만들면 아군이 생긴다

2019년 Liquid Death가 처음 물을 팔기 시작했을 때, 투자자들 대부분이 거절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물에 무슨 브랜딩이 필요해?"

맞는 말이다. 물은 물이다. H2O. 에비앙이든 아이시스든 분자 구조는 같다. 수원지가 알프스든 제주도든 목마름을 해결하는 기능은 동일하다. 차별화할 게 없다.

그런데 Liquid Death는 5년 만에 기업가치 14억 달러가 됐다. 2023년 매출 2억 6,300만 달러. 물 파는 회사가.

비결은 물을 팔지 않은 것이다. 적을 판 것이다.


Liquid Death의 적은 "플라스틱"이다.

정확히 말하면 "플라스틱 생수병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다. 그들의 슬로건 "Death to Plastic"은 환경 캠페인이 아니다. 선전포고다.

이 선전포고가 만든 구도를 보자. 한쪽에는 Liquid Death가 있다. 알루미늄 캔, 재활용 가능, 해양 오염에 반대. 다른 쪽에는 "플라스틱 생수병"이 있다. 에비앙, 볼빅, 아이시스—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모두가 안다.

고객이 Liquid Death를 사는 순간 그는 단순히 물을 사는 게 아니다. 진영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플라스틱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구매가 정체성 표현이 된다.

이게 적을 만들면 생기는 일이다.


적이 없는 브랜드는 특징도 없다.

대부분의 마케팅은 적을 피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적을 만들면 그 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떠나니까. 안전하게 가려고 한다. "우리는 모두를 위한 제품입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모두를 위한 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뇌는 대비를 통해 기억한다. 흰 배경에 흰 점은 안 보인다. 검은 점이 있어야 흰 점이 보인다. 적이 있어야 당신이 보인다.

Liquid Death가 "우리는 친환경적인 물입니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수십 개의 친환경 생수 브랜드 중 하나가 됐을 것이다. "플라스틱을 죽여라"라고 했기 때문에 유일한 반역자가 됐다.


적을 만드는 건 위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안전하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설명하겠다.

적이 없는 브랜드는 모든 경쟁자와 싸워야 한다. 물 시장에서 Liquid Death 없이 새 브랜드가 들어온다고 치자. 에비앙과 싸워야 한다. 볼빅과 싸워야 한다. 삼다수와 싸워야 한다. 모든 방향에서 공격이 온다. 방어할 곳이 너무 많다.

적을 정하면 전선이 하나로 줄어든다. Liquid Death의 전선은 "플라스틱 vs 알루미늄"뿐이다. 에비앙이 갑자기 알루미늄 캔으로 바꾸지 않는 한, Liquid Death의 포지션은 안전하다. 적이 움직이지 않으면 내 자리도 움직이지 않는다.

적을 만드는 건 수비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여기서 흔한 실수가 있다. 경쟁사를 적으로 삼는 것.

"우리는 질레트보다 낫습니다." 이건 적을 만드는 게 아니다. 비교 광고다. 비교 광고는 적을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효과가 다르다.

경쟁사를 직접 공격하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째, 그 경쟁사의 존재감을 높여준다. "질레트보다 낫다"고 말하는 순간 고객의 뇌에서 질레트가 떠오른다. 광고비 들여서 경쟁사 홍보해주는 꼴이다.

둘째, 방어전에 끌려들어간다. 질레트가 반격하면 당신도 반격해야 한다. 진흙탕 싸움이 시작된다. 둘 다 더러워진다. 보통 더 큰 쪽이 덜 더러워진다.

효과적인 적은 경쟁사가 아니다. 관념이다. 믿음이다. 시스템이다.

Dollar Shave Club의 적은 질레트가 아니었다. "좋은 면도기는 비싸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질레트는 그 믿음의 상징일 뿐이었다.

Apple의 적은 IBM이 아니었다. "컴퓨터는 전문가용이다"라는 관념이었다. 1984 광고에서 IBM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이유다.

적은 추상적일수록 오래 간다. 회사는 바뀌고 제품은 단종되지만, 관념은 수십 년을 버틴다.


적을 만들 때 확인해야 할 게 있다.

그 적이 당신의 고객도 싫어하는가.

당신만 싫어하는 적을 공격하면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다. 고객이 이미 불만을 품고 있는 대상을 공격해야 한다. "맞아, 나도 그거 싫었어." 이 공감이 연대를 만든다.

Liquid Death가 플라스틱을 적으로 삼을 수 있었던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플라스틱 오염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거북 코에 빨대 꽂힌 사진, 태평양 쓰레기 섬 뉴스—이런 것들이 이미 적에 대한 반감을 만들어놓았다. Liquid Death는 그 반감에 이름을 붙이고 깃발을 꽂은 것이다.

적을 발명하려고 하지 마라. 이미 있는 적을 발견해라.

고객의 불만, 짜증, 좌절 속에 적이 숨어 있다. 인터뷰에서 찾아라. 리뷰에서 찾아라. 커뮤니티 댓글에서 찾아라. "진짜 짜증나는 게 뭐예요?"라고 물어라. 거기서 나온 답이 당신의 적이다.


적을 정했으면 다음은 명명이다.

적에게 이름을 붙여야 한다. 이름 없는 적은 싸우기 어렵다. 막연한 불만은 막연한 불만으로 남는다. 이름이 붙으면 구체화된다. 공격할 수 있게 된다.

Liquid Death는 "Plastic"이라고 불렀다. 단순하고 명확하다.

Dave Ramsey는 빚을 "Debt Snowball"이라고 불렀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 이 이름 덕분에 그의 프로그램 전체가 "눈덩이 굴리기"라는 은유 위에 섰다.

Basecamp는 기능 과잉을 "Feature Creep"이라고 불렀다. 기능이 슬금슬금 늘어나서 제품을 망친다는 뜻이다. 이 이름 덕분에 "우리는 기능을 안 늘립니다"가 강점이 됐다.

이름을 붙이면 적이 실체가 된다. 실체가 있어야 죽일 수 있다.


적을 만들면 잃는 것도 있다.

그 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떠난다. 플라스틱 생수병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들은 Liquid Death를 불편해한다. "뭘 그렇게까지..." 이 사람들은 고객이 안 된다.

괜찮다. 아니, 좋다.

적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충성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브랜드는 내 편이다"라는 느낌. 이 느낌은 기능적 만족보다 강하다. 더 비싸도 산다. 불편해도 산다. 대안이 있어도 안 바꾼다.

모든 사람에게 70점짜리 브랜드보다, 일부에게 100점짜리 브랜드가 낫다. 적은 이 선별 작업을 해준다.


적을 만든 후에는 계속 싸워야 한다.

한 번 선전포고하고 끝이 아니다. 적과의 전쟁은 콘텐츠가 된다. Liquid Death는 지금도 계속 플라스틱을 공격한다. 영상으로, 이벤트로, 콜라보로. "Death to Plastic"은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브랜드의 존재 방식이다.

싸움을 멈추면 적이 사라진다. 적이 사라지면 당신의 정체성도 흐려진다. "아, 그 브랜드 예전에 뭔가 반항적이었는데..." 기억이 희미해진다.

적은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정리하면 이렇다.

적을 만들면 세 가지가 생긴다. 첫째, 당신이 선명해진다. 배경에서 튀어나온다. 둘째, 고객이 아군이 된다. 구매가 정체성 표현이 된다. 셋째, 수비 범위가 좁아진다. 한 전선만 지키면 된다.

대신 잃는 것도 있다. 적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들은 떠난다.

이 교환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적을 만들어라. 받아들일 수 없으면 만들지 마라. 어중간하게 만들면 양쪽 다 잃는다.

적을 만들 거면 제대로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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