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바이팅3:신념이 마크가 된다
2004년 Dove가 "Real Beauty"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 광고업계는 의아해했다. 비누 회사가 왜 "아름다움의 정의"를 논하는가. 제품 기능을 말해야 할 시간에 철학을 말하고 있다.
20년이 지났다. Dove는 여전히 같은 캠페인을 하고 있다. "Real Beauty"는 슬로건을 넘어서 Dove라는 브랜드 자체가 됐다. 비누 성분이 바뀌어도, 제품 라인이 확장되어도, 그 신념은 그대로다.
신념이 20년을 버틴 것이다.
대부분의 마케팅 메시지는 1년을 못 버틴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능을 말하기 때문이다. "보습력 48시간 지속." 경쟁사가 72시간 나오면 끝이다. "가격 대비 최고." 더 싼 게 나오면 끝이다. 기능은 따라잡힌다. 따라잡히면 메시지가 무효화된다.
신념은 따라잡히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는 Dove의 신념을 경쟁사가 복사할 수 있을까. 문장은 복사할 수 있다. 하지만 20년간 같은 메시지를 반복한 역사는 복사할 수 없다. 수천 편의 광고, 수백 번의 캠페인, 수십 번의 논란을 견딘 일관성은 복사할 수 없다.
신념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유일한 자산이다.
신념이 마크가 되는 원리를 보자.
마크는 "기억"이 아니다. "언제 떠오르는가"다. Dove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내 몸이 못생겼다고 느낄 때" Dove가 떠오르는 사람은 다른 수준이다. 전자는 인지도다. 후자는 마크다.
신념은 이 "떠오르는 순간"을 만든다. Dove의 신념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는 특정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외모에 대한 불안, 사회적 기준에 대한 반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 이런 감정이 촉발되면 Dove가 떠오른다.
기능은 이런 연결을 만들지 못한다. "보습력 48시간"이 떠오르는 순간이 뭔가. 피부가 건조할 때? 그때 떠오르는 건 "보습제"라는 카테고리지, Dove가 아니다.
신념은 카테고리를 뛰어넘는 연결을 만든다.
Patagonia를 보자.
"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업한다. 아웃도어 의류 회사의 미션으로는 과하게 들린다. 옷 팔아서 지구를 어떻게 구한다는 건가.
하지만 이 신념이 50년간 일관되게 유지됐다. 1973년 창업 이래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환경 캠페인에 매출의 1%를 기부한다. 옷을 고쳐 입으라고 광고한다. "Don't Buy This Jacket"이라는 블랙프라이데이 광고를 낸다. 자기 옷 사지 말라고.
미친 짓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미친 짓이 마크가 됐다.
환경을 걱정하는 사람이 아웃도어 재킷을 살 때, Patagonia가 먼저 떠오른다. 노스페이스가 아니라. 콜롬비아가 아니라. 아크테릭스가 아니라. 기능이 비슷해도, 가격이 더 비싸도, Patagonia가 먼저다.
신념이 엔트리 노드가 된 것이다.
신념이 마크가 되려면 조건이 있다.
첫째, 목숨 걸 언덕이어야 한다.
영어로 "Hill to Die On"이라고 한다. 이 언덕을 지키기 위해서는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과장이 아니다. 사업적으로 손해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Patagonia가 "Don't Buy This Jacket" 광고를 냈을 때, 단기 매출은 떨어졌을 수 있다. 하지만 신념의 진정성이 증명됐다. "이 회사는 진짜로 저걸 믿는구나." 말로만 환경을 외치는 회사는 많다. 자기 매출을 깎으면서까지 환경을 외치는 회사는 드물다.
손해를 감수하지 않는 신념은 슬로건에 불과하다. 슬로건은 마크가 안 된다.
둘째, 반복이다.
신념은 한 번 말해서 각인되지 않는다. 수백 번, 수천 번 반복되어야 한다. 모든 접점에서. 모든 매체에서. 모든 순간에.
Dove의 "Real Beauty"가 20년간 유효한 이유가 여기 있다. 2004년 첫 캠페인부터 2024년 지금까지, 메시지의 핵심은 바뀌지 않았다. 실행 방식은 바뀌었다. 영상 포맷도, 모델도, 채널도 바뀌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는 한 문장은 20년간 그대로다.
반복이 지겨워지면 안 된다. 당신이 지겨울 때, 고객은 이제 막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내부에서 "이제 새로운 메시지 해볼까요?"라는 말이 나올 때가 버텨야 할 때다.
신념의 적은 경쟁사가 아니다. 내부의 지루함이다.
셋째, 증거다.
말로만 신념을 외치면 아무도 안 믿는다.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것도 반복적으로.
Patagonia가 신념을 증명한 방식을 보자. 2022년, 창업자 이본 쉬나드가 회사 전체를 환경 단체에 기부했다. 30억 달러 가치의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지구에 물려줬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업한다"는 50년 된 신념의 최종 증명이었다.
여기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작은 증거들은 계속 쌓여야 한다. 환경을 위해 포장재를 바꿨다. 환경을 위해 생산 공정을 바꿨다. 환경을 위해 특정 소재 사용을 중단했다. 이런 증거들이 쌓이면 신념이 진짜가 된다.
증거 없는 신념은 구호다. 구호는 증발한다.
여기서 많이 하는 실수가 있다. 좋은 말을 신념으로 착각하는 것.
"고객 중심." "혁신." "품질." "신뢰." 이런 단어들을 미션 스테이트먼트에 넣는 회사가 많다. 이건 신념이 아니다. 당연한 말이다. 고객 중심 아닌 회사가 어딨나. 품질 신경 안 쓰는 회사가 어딨나.
신념은 논쟁적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는 논쟁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동의 안 한다. "아니, 객관적으로 예쁜 사람과 못생긴 사람은 있다"고 반박한다. 이 반박이 있기 때문에 Dove의 신념이 의미가 있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업한다"는 논쟁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비웃는다. "기업이 무슨 지구를 구해. 돈 벌려고 하는 거지." 이 비웃음이 있기 때문에 Patagonia의 신념이 선명하다.
모두가 동의하는 건 신념이 아니다. 상식이다. 상식으로는 마크가 안 남는다.
신념을 정하는 방법이 있다.
거꾸로 가는 것이다.
먼저, 업계의 상식을 적어라. 모든 경쟁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 "옷은 계절마다 새로 사야 한다." "비싼 게 좋은 거다." "예쁜 사람이 광고 모델이어야 한다."
다음, 그 상식에 반기를 들어라. "옷은 오래 입을수록 좋다." "적당한 가격이 최고다." "보통 사람이 광고 모델이어야 한다."
이 반기가 당신의 신념 후보다. 후보 중에서 진짜로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킬 수 있는 걸 골라라. 그게 당신의 "Hill to Die On"이다.
진짜로 죽을 각오가 없으면 고르지 마라. 어차피 못 지킨다.
신념이 마크가 되면 마케팅이 쉬워진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신념에서 나오는 말을 하면 된다. 무슨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신념을 증명하는 콘텐츠를 만들면 된다. 어떤 콜라보를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신념에 맞는 파트너와 하면 된다.
신념은 의사결정 필터다.
Patagonia에 "이번에 패스트패션 브랜드랑 콜라보 어때요?"라고 제안하면, 논의할 필요도 없다. 신념에 안 맞으니까 안 하는 거다. 30초 만에 결정 끝이다.
신념이 없으면 모든 기회가 고민거리다. "할까 말까, 이게 우리 이미지에 맞나, 고객이 어떻게 생각할까..." 신념이 있으면 기회의 90%는 자동으로 걸러진다. 남은 10%만 고민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경고 하나.
신념은 바꾸면 안 된다.
한 번 정하면 끝까지 가야 한다. 10년, 20년, 50년. 중간에 바꾸면 지금까지 쌓은 게 전부 무너진다. Dove가 갑자기 "역시 날씬한 게 예쁘다"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20년 신뢰가 하루아침에 증발한다.
그래서 신념을 정할 때 신중해야 한다. "이거 50년 해도 안 질리겠나?" 이 질문에 "예"가 아니면 정하지 마라.
질리면 끝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기능은 따라잡힌다. 신념은 따라잡히지 않는다.
신념이 마크가 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목숨 걸 각오, 수십 년의 반복, 행동으로 하는 증명.
모두가 동의하는 건 신념이 아니다. 상식이다.
신념은 한 번 정하면 못 바꾼다. 그래서 정할 때 신중해야 한다.
질리면 끝이다. 끝까지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