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바이팅4: 왜 편의점 음료수 칸에는 늘 같은 얼굴만 있는가
편의점 음료 냉장고를 열어보라. 코카콜라, 펩시, 포카리스웨트, 레드불, 몬스터. 10년 전에도 이 얼굴들이었고, 지금도 이 얼굴들이다.
매년 수백 개의 새 음료가 출시된다. 대부분 1년을 못 버틴다. 편의점 냉장고에서 슬그머니 사라진다.
왜 음료 시장에서는 신생 브랜드가 살아남기 어려운가.
신념이 부족해서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음료수에 무슨 신념이 필요한가. 마시면 되는 거 아닌가.
거꾸로다. 음료수이기 때문에 신념이 필요하다.
음료는 저관여 상품이다. 고를 때 고민 안 한다. 비교 안 한다. 검색 안 한다. 냉장고 열고, 눈에 들어온 거, 손에 잡히는 거, 그거 산다. 3초면 끝이다.
이 3초 안에 선택받으려면 뭐가 필요한가. 그 순간 떠올라야 한다. 목마를 때, 피곤할 때, 더울 때—그 순간 당신의 브랜드가 고객 머릿속에 튀어나와야 한다.
떠오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떠오르게 만드는 건 쉽지 않다.
한두 번 광고해서 되는 게 아니다. 수십 년간 반복해서 뇌에 박아야 한다. "더울 때 → 코카콜라", "피곤할 때 → 레드불", "운동할 때 → 포카리스웨트". 이 연결을 만드는 데 수천억이 들어간다.
레드불을 보자.
레드불은 에너지 음료를 팔지 않는다. "한계를 넘어서는 삶"을 판다. 그래서 마케팅 비용의 대부분을 익스트림 스포츠에 쓴다. 스카이다이빙, 클리프다이빙, 모터스포츠, 에어레이스. 레드불 스트라토스 프로젝트에서는 사람을 성층권에서 뛰어내리게 했다. 음료 회사가.
미친 짓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게 레드불을 "극한"과 연결시켰다. 피곤할 때, 밤새워야 할 때, 한계를 넘어야 할 때—레드불이 떠오른다. 이 연결을 만드는 데 30년이 걸렸다.
신생 브랜드가 이걸 따라할 수 있을까.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
몬스터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몬스터는 레드불보다 늦게 시작했다. 레드불의 "극한"을 정면으로 따라가면 질 게 뻔했다. 그래서 다른 영토를 골랐다. 모터스포츠, 게이밍, UFC, 헤비메탈. "반항적인 젊음"의 영토다.
몬스터 로고가 붙은 곳을 보라. 나스카 레이싱카, e스포츠 대회, 격투기 옥타곤, 스케이트보드 대회. 전부 "주류에 반항하는" 느낌이다. 이 느낌이 몬스터의 신념이다.
결과는? 레드불과 몬스터가 에너지 음료 시장의 80%를 먹는다. 나머지 수십 개 브랜드가 20%를 나눠 먹는다.
P&G가 마케팅에 미친 듯이 돈을 쓰는 이유도 여기 있다.
P&G 제품을 보라. 세제, 샴푸, 면도기, 기저귀, 치약. 전부 저관여다. 마트에서 3초 만에 골라야 한다. 3초 안에 떠올라야 한다.
그래서 P&G는 연간 광고비가 80억 달러다. 세계에서 광고를 가장 많이 하는 회사 중 하나다. 타이드, 질레트, 팬틴, 팸퍼스—각 브랜드가 자기 카테고리에서 1등 자리를 유지하려면 이 돈이 필요하다.
저관여 시장에서 마케팅을 줄이면 죽는다. 떠오르지 않으면 선택되지 않으니까.
반대의 경우를 보자.
로컬 B2B 업체. 공장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파는 회사.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컨설팅 펌.
이런 회사들에게 "세계관을 팔아라", "신념을 정립해라"라고 하면 이상하다. 필요 없다.
왜? 고관여니까.
B2B 구매는 3초 만에 안 일어난다. 검토하고, 비교하고, 견적 받고, 미팅하고, 협상한다. 결정까지 몇 주, 몇 달 걸린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신념이 아니다. 기능, 가격, 실적, 신뢰도다.
"저 회사가 믿는 가치가 뭐지?"—이런 질문 안 한다. "저 회사가 제대로 납품할 수 있나?"—이 질문을 한다.
고관여 시장에서는 실용성이 신념을 이긴다.
정리하면 이렇다.
저관여 시장: 3초 만에 선택된다. 떠올라야 이긴다. 떠오르려면 신념을 미친 듯이 박아야 한다. 레드불처럼, 코카콜라처럼, P&G처럼. 마케팅비가 수천억이다.
고관여 시장: 몇 주 걸려 선택된다. 비교해서 이긴다. 비교에서 이기려면 실용성을 증명해야 한다. 가격, 품질, 레퍼런스, 신뢰. 신념 없어도 된다.
둘을 헷갈리면 망한다.
편의점 음료 냉장고에 늘 같은 얼굴만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신생 음료 브랜드 대부분은 마케팅을 "하면 좋은 것"으로 본다. 제품 만들고, 유통 깔고, 남는 돈으로 광고 좀 한다. 이러면 죽는다.
저관여 시장에서 마케팅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제품 그 자체다. 코카콜라의 검은 액체보다 코카콜라의 빨간 로고가 더 중요하다. 레드불의 카페인 함량보다 레드불의 익스트림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
신생 브랜드가 이걸 이해 못 하면 1년 안에 사라진다. 이해해도 돈이 없으면 사라진다. 이해하고 돈도 있어야 살아남는다.
그래서 늘 같은 얼굴만 남는 거다.